• 대한제분·CJ제일제당 등 7개사, 6년간 24차례 가격 조작
  • 공정위, 반독점 역사상 단일 품목 ‘역대 최대’ 제재 단행
제분사별 부과 과징금액(단위: 백만원). (사진=연합뉴스)

국내 베이커리, 라면, 제과 등 가공식품 업계의 핵심 원재료인 밀가루 공급 시장을 사실상 독점해 온 대형 제분사들이 무려 6년 동안 조직적으로 가격과 물량을 조작해 온 사실이 정부 당국에 덜미를 잡혔다. 이들은 정부가 서민 물가를 안정시키기 위해 투입한 천문학적인 국민 세금 보조금까지 고스란히 수령하면서도, 뒤로는 가격 인상 조작을 멈추지 않는 대담한 행보를 보인 것으로 드러났다. 공정거래위원회는 국내 시장을 장악한 7개 밀가루 제조·판매 사업자의 기업소비자간거래(B2B) 가격 담합 행위를 적발하고, 국내 반독점 규제 역사상 단일 품목으로는 최대 규모인 총 6710억 4500만 원의 과징금을 전격 부과했다.

사정당국의 칼날을 맞은 기업은 대한제분, 씨제이제일제당, 사조동아원, 삼양사, 대선제분, 삼화제분, 한탑 등 국내 밀가루 공급의 핵심 축을 담당하는 7개 사다. 이들이 B2B 밀가루 판매 시장에서 차지하는 합산 점유율은 무려 87.7%에 달한다. 담합 프로세스의 서막은 지난 2019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시장 점유율 확대를 노린 대한제분이 국내 최대 수요처인 농심의 입찰에서 파격적인 저가 투찰로 물량을 독식하자, 위기감을 느낀 사조동아원 등 경쟁사들이 중소 대리점을 상대로 출혈 경쟁을 벌이며 시장 전반의 수익성이 악화됐다. 이에 업계 '빅3'인 대한제분, 씨제이제일제당, 사조동아원의 고위 임원진들은 비밀 회합을 갖고 무분별한 경쟁을 지양하고 마진을 보존하자는 추악한 밀약을 맺으며 카르텔을 형성했다.

이들의 담합 범죄는 치밀하고 단계적으로 고도화됐다. 처음에는 농심과 팔도 등 대형 식품 대기업을 상대로 가격을 조작하기 시작하더니, 이듬해에는 삼화제분 등 하위 업체들까지 끌어들여 전국의 중소 대리점과 외식업체를 대상으로 판매하는 중력분 등 전 제품으로 범위를 넓혔다. 이들이 약 6년간 벌인 비밀 회합 횟수만 총 55회에 달하며, 최종 확정된 가격 인상 및 물량 제한 합의만 24차례에 이른다. 특히 이들은 원료인 원맥의 99%를 수입에 의존하는 거시경제적 취약점을 악용했다. 국제 밀 시세가 요동치던 기간 동안 원가 상승 요인이 발생하면 즉각적으로 판매가격을 최고 수준으로 올렸고, 정작 국제 시세가 하락세로 돌아서자 마진을 극대화하기 위해 가격 인하 시기를 최대한 늦추는 방식으로 폭리를 취했다.

가장 충격적인 대목은 정부의 물가 안정을 위한 세금 지원책을 기만했다는 점이다. 정부는 고물가 기조 속에서 서민 먹거리 부담을 완화하기 위해 제분사들이 출하 가격을 동결할 경우 인상 요인 부하의 80%를 현금으로 보전해 주는 보조금 사업을 시행했다. 7개 제분사는 이 사업을 통해 총 471억 원의 정부 보조금을 지원받아 곳간을 채우면서도, 물밑에서는 대형 식품기업들을 상대로 단가 인상 협상을 지속하는 이중플레이를 펼쳤다. 그 결과 담합의 폐해가 정점에 달했던 시기, 밀가루 공급 가격은 담합 이전 대비 품목별로 최소 38%에서 최대 74%까지 폭등하며 고스란히 전 국민의 장바구니 물가 부담으로 전가됐다.

공정위의 이번 조치는 독과점 과점 체제의 폐해를 뿌리 뽑겠다는 강력한 사정 의지가 반영됐다. 해당 기업들은 이미 지난 2006년에도 동일한 밀가루 수급 담합 행위로 시정명령과 과징금 처분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대형 로펌의 방어막과 은밀한 메신저 연락을 통해 범죄를 재발하는 대담함을 보였다. 이에 당국은 단순 금전적 제재에 그치지 않고 시장의 왜곡된 가격 체계를 강제로 리셋하는 '독자적 가격재결정 명령'을 사상 최초로 발동했다. 또한 검찰의 고발 요청 절차에 따라 담합을 주도한 핵심 임원진 14명을 전원 검찰에 고발 조치 완료했으며, 향후 밀가루를 원료로 쓰는 라면, 빵, 과자 등 가공식품 전반의 도미노 가격 인하 경쟁을 촉진해 민생 경제의 실질적인 부담을 완화하겠다고 선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