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다리 타기로 가격 인상 순서 정하고 ‘공선생’ 피해 은폐…담합 규모 수조원대
  • 검찰, 제분·제당·전력 입찰 담합 전방위 수사…대표급 임원 구속 기소
밀가루와 설탕 등 민생과 직결된 생필품 시장에서 수년간 가격 담합을 벌여 물가 상승을 초래한 혐의로 업체 관계자들이 대거 재판에 넘겨졌다.
밀가루·설탕·전기 등 민생 밀접 품목에서 수년간 짬짜미를 벌여 물가 상승을 초래한 업체들이 대거 재판에 넘겨졌다. (사진=연합뉴스)

밀가루와 설탕 등 민생과 직결된 생필품 시장에서 수년간 가격 담합을 벌여 물가 상승을 초래한 혐의로 업체 관계자들이 대거 재판에 넘겨졌다. 서울중앙지검 공정거래조사부는 생필품 시장 질서를 교란한 혐의로 업체 관계자 등 총 52명을 기소했다고 2일 밝혔다.

검찰은 지난해 9월부터 밀가루와 설탕, 전기 등 주요 생필품과 공공 입찰 분야의 담합 사건을 집중 수사해 왔다. 수사 결과, 일부 업계에서는 가격 인상 시기와 폭을 사전에 조율하고, 수사와 단속을 피하기 위한 은폐 정황까지 조직적으로 드러난 것으로 조사됐다.

국내 밀가루 시장의 약 75%를 과점하고 있는 대한제분과 사조동아원, 삼양사 등 6개 제분사는 2020년부터 3년 이상 밀가루 가격 인상 시점과 인상 폭을 사전에 합의한 혐의로 적발됐다. 이 사건으로 대표이사와 회장을 포함한 20명이 기소됐으며, 담합 규모는 5조9,913억 원에 이르는 것으로 조사됐다.

검찰이 확보한 녹취록과 내부 자료에 따르면, 이들 업체는 가격 인상 통보 순서를 ‘사다리 타기’로 정해 담합 의심을 피하려 했고, 공정거래위원회를 은어로 부르며 연락을 최소화하는 등 조직적으로 범행을 은폐해 온 것으로 드러났다.

설탕 시장에서도 유사한 담합 구조가 확인됐다. CJ제일제당 등 시장 점유율 90% 이상을 차지하는 제당 3사는 원당 가격 변동을 계기로 가격을 공동으로 조정하며 3조2,715억 원대의 담합을 벌인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원당 가격이 오를 때는 일제히 가격을 인상하고, 환율 하락 국면에서는 가격 인하를 막아 수익을 유지한 정황이 수사 과정에서 확인됐다.

이들은 정부의 가격 인하 요청에도 공동 대응 방안을 마련해 인하를 지연했고, 수사가 시작되자 내부 자료를 조직적으로 삭제한 정황도 포착됐다. 검찰은 공정거래위원회의 고발 요청을 토대로 수사를 본격화해 담합을 주도한 대표급 임원 2명을 구속 기소하는 등 총 13명을 재판에 넘겼다.

이와 함께 효성과 현대, LS 등 10개 업체가 한국전력 발주 전력 설비 입찰 과정에서 낙찰 가격을 사전에 협의해 1,600억 원 이상의 부당 이득을 챙긴 사건도 함께 수사됐다. 이 사건과 관련해 임직원 4명이 구속 기소됐고, 15명은 불구속 상태로 재판에 넘겨졌다.

검찰은 이들 업체가 내부 회의에서 담합을 ‘운이 나쁘면 걸리는 일’로 표현하며, 수사에 대비해 책임을 하위 직원에게 전가하는 이른바 ‘꼬리 자르기’ 시나리오까지 준비한 정황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검찰은 이번 기소를 통해 생필품과 공공 입찰 시장에서의 구조적 담합 관행에 경종을 울린다는 방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