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큐라 RDX·0 시리즈 등 핵심 EV 라인업 폐기… 사실상 글로벌 전동화 대열 '자진 퇴출'
- 소프트웨어(SDV) 혁신 기회까지 상실… 내연기관 안주하다 중국·테슬라에 미래 통째로 내주나

글로벌 자동차 시장의 전동화 파고가 거세지는 가운데, 일본의 자존심 혼다(Honda)가 사실상 전기차(EV) 시장에서의 백기 투항을 선언했다. 이번 주 혼다는 개발 중이던 차세대 전기차 프로그램인 아큐라(Acura) RDX 전기차 모델과 ‘0(제로) 시리즈’ 세단 및 SUV의 개발을 전면 중단한다고 발표했다. 뒤이어 제너럴모터스(GM)와 협력하여 생산하던 ‘프롤로그(Prologue)’의 생산 중단 소식까지 전해지며, 업계에서는 혼다가 미래 자동차 산업의 주도권을 완전히 상실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혼다는 이번 결정의 배경으로 미국의 관세 장벽과 중국 업체들의 저가 공세를 꼽았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혼다가 애초부터 실효성 있는 전기차 전략을 구축하지 못했다고 지적한다. 단순히 기존 내연기관차의 차체에 배터리와 모터만 갈아 끼우는 방식으로는 테슬라나 리비안, BYD 같은 전기차 전용 플랫폼 기반 업체들과 경쟁하기 역부족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포드(Ford) 역시 내연기관 플랫폼을 변형한 머스탱 마하-E 개발 과정에서 배선 하네스가 테슬라보다 약 32kg 더 무거워지는 등 효율성 한계에 부딪힌 바 있다.
더 큰 문제는 '소프트웨어 정의 차량(SDV)'으로의 전환 기회를 놓치게 되었다는 점이다. 최신 전기차 사용자들은 스마트폰처럼 차량 소프트웨어가 수시로 업데이트되고 자율주행 기능이 고도화되는 경험에 익숙해져 있다. 고전압 배터리를 갖춘 전기차는 주차 중에도 고성능 컴퓨터를 구동해 무선 업데이트(OTA)를 수행하기 유리하지만, 내연기관 중심의 혼다 체제에서는 이러한 혁신을 기대하기 어렵다.
혼다는 현재 정체성 위기에 직면해 있다. "최고의 엔진을 만드는 회사"라는 자부심은 전동화 시대에 접어들며 그 가치가 하락하고 있다. 가볍고 핸들링이 좋은 '운전자의 차'라는 강점 또한 자율주행 기술이 보편화되면 시장에서의 매력이 반감될 수밖에 없다. 특히 중국 시장에서의 참패는 뼈아프다. 혼다는 최근 실적 보고서를 통해 "신흥 EV 제조사보다 더 나은 가성비를 제공하지 못해 경쟁력이 하락했다"고 인정했으며, 이는 지난해 약 21조 원(160억 달러)에 달하는 손실로 이어졌다.
전기차는 내연기관차보다 부품 수가 적어 장기적으로 유지 보수가 쉽고 가격 경쟁력 확보가 용이하다. 혼다가 당장의 수익성을 위해 기존의 방식을 고수하며 EV 개발을 멈춘 것은, 결국 미래 고객들이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신뢰성'과 '가격'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놓치는 결과를 초래할 가능성이 크다. 업계는 혼다가 이번 '중단 선언'으로 인해 향후 글로벌 자동차 생태계의 재편 과정에서 변두리로 밀려날 위험이 크다고 보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