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외인·기관 5조 원 역대급 매물 폭탄에 장중 8% 급락… 환율 1500원 돌파 가시권
  • 국제유가 114달러 폭등하며 38년 만에 최대 상승… 개인투자자 4.7조 ‘사투적 매수’
중동발 지정학적 리스크가 에너지 쇼크를 넘어 국내 금융시장을 집어삼키는 블랙홀이 됐다.
9일 오전 서울 중구 하나은행 본점 딜링룸에서 한 직원이 업무를 보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중동발 지정학적 리스크가 에너지 쇼크를 넘어 국내 금융시장을 집어삼키는 블랙홀이 됐다. 이란의 호르무즈 해협 봉쇄라는 극단적 조치로 유조선 운항이 전면 중단되자, 국제유가가 유례없는 폭등세를 기록하며 코스피 지수를 장중 5100선 아래로 끌어내렸다. 9일 오후 서울 외환시장과 주식시장은 패닉 셀링(Panic Selling) 양상을 보였으며, 외국인과 기관이 쏟아내는 수조 원대 매물을 개인이 온몸으로 받아내는 위태로운 장세가 이어졌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이날 오전 10시 31분경 코스피 지수가 전 거래일보다 8% 이상 폭락한 상태가 1분간 지속되자 향후 20분간 모든 매매를 중단하는 서킷브레이커가 전격 발동됐다. 이는 이스라엘과 이란 간의 확전 우려가 극에 달했던 지난 4일 이후 불과 3거래일 만에 재현된 참사다. 한 달 사이 두 번의 서킷브레이커가 발생한 것은 글로벌 팬데믹이 정점에 달했던 2020년 3월 이후 처음 있는 일로, 시장의 공포 지수가 극한에 치달았음을 보여준다.

증시 폭락의 직접적인 도화선은 뉴욕상업거래소(NYMEX)에서 거래된 서부텍사스산원유(WTI) 선물 가격이었다. 전일 대비 25.53% 폭등하며 배럴당 114.11달러를 기록한 유가는 장중 한때 30% 가까운 상승률을 보이며 117달러 선을 위협했다. 블룸버그 등 외신에 따르면 이는 1988년 이후 일일 최대 상승 폭으로 기록됐다. 쿠웨이트와 이라크 등 주요 산유국들이 저장 공간 부족과 운송 차질을 이유로 감산에 돌입했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공급망 붕괴에 대한 우려가 실물 경제와 금융 시장을 동시에 타격했다.

수급 측면에서는 외국인이 약 3조 757억 원, 기관이 1조 6922억 원을 순매도하며 지수 하락을 주도했다. 반면 개인 투자자들은 약 4조 6887억 원의 순매수를 기록하며 홀로 하락장을 지탱하는 이른바 ‘동학개미’의 사투를 재연했다. 그러나 시가총액 상위 종목들은 처참하게 무너졌다. 삼성전자가 약 10% 가까이 하락했고, SK하이닉스와 SK스퀘어는 각각 11%대의 폭락세를 보였다. 반면 유가 상승의 수혜가 예상되는 HD현대중공업만이 시총 상위 10개 종목 중 유일하게 1%대 상승세를 유지하며 버텼다.

외환시장 역시 요동쳤다. 이날 달러·원 환율은 1493.0원으로 출발한 뒤 장중 1499.2원까지 치솟으며 심리적 저항선인 1500원 선을 턱밑까지 추격했다. 외환 당국의 구두 개입 가능성과 상승 폭 축소로 1490원대에서 등락을 반복하고 있으나, 안전자산 선호 심리가 강화되면서 원화 약세 압력은 여전히 거센 상황이다. 코스닥 시장 역시 에코프로와 알테오젠 등 시총 상위주들이 일제히 급락하며 전일 대비 약 6% 하락한 1080선에서 거래를 이어가고 있다.

중동의 전운이 가시지 않는 한 국내 증시의 변동성은 당분간 해소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특히 유가 상승이 수입 물가를 자극해 인플레이션 우려를 다시 키울 경우, 금리 인하 기대감마저 꺾일 수 있어 투자자들의 주의가 요구된다. 시장 관계자들은 호르무즈 해협의 봉쇄 해제 여부와 산유국들의 추가 대응이 향후 증시 향방을 결정지을 핵심 변수가 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